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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/마인드

조선산업 세계 1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

by 이레이피씨 2024. 4. 24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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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️대한민국 조선 산업의 역대급 성과와 역사 흐름
   - 한국 조선 산업이 1분기에 136억 달러의 수주를 통해 세계 1위에 올랐으며, 과거 강대국에서 왕퇴 후 다시 1위로 등극했다.
   - 우리나라는 전 세계 발주 수주 중 44.7%의 비율을 차지하며, 중국을 약간 앞서가고 있다.
   - 1분기 수주액은 136억 달러로, 중국의 126억 달러와 크게 차이 나지 않으며, 경쟁은 계속될 전망이다.

2.️한국 조선산업: 역사와 현황
   - 3월 cgt 기준으로 세계 조선소 순위에서 한국 기업들이 1~3위를 독점하는 기쁜 소식이 있었다.
   - 작년에 299억 달러를 수주했지만 올해 1분기만에 136억 달러를 받아들여 작년 대비 양 40~50%를 수주로 확대했다.
   - 한국 경제의 발전과 박정희 대통령 시대의 어려움, 일본의 영향 등을 역사적 배경으로 설명하며, 북한과의 비교에서 우리나라의 산업 인프라 부족함을 강조한다.
   - 일제 감정기 시절에 일본이 북한에 산업 기반 시설을 많이 제공한 반면에, 한국의 산업 인프라 부족은 한국 전쟁 이전까지도 계속되었음을 설명하며 슬픔을 전한다.

3.1960년대 한국의 산업 변화와 박정희 대통령의 역할
   - 1960년대, 한국은 경공업에서 중공업으로의 전환이 이뤄지며 박정희 대통령이 2차 경제개발 계획을 내놓았다.
   - 조선, 화학, 기계, 제철 업종이 국책 사업으로 육성되었고, 정부와 기업의 협력으로 급속한 발전을 이루었다.
   - 이 변화는 정부의 푸시, 보조금 지원과 기업가의 노력으로 이루어졌으며, 조선 산업은 중요한 부문 중 하나였다.
   - 이러한 변화는 현재의 포스코를 비롯한 한국의 제철 산업으로 이어졌다.

4.️박정희 대통령의 강압적 조선 사업 추진
   - 박정희 대통령이 조선 사업을 위해 외부 차관을 빌리려 하지만 거절을 당해 화를 내며, 청와대 비서실에 속이터 화난 모습.
   - 박정희 대통령이 기업인들에게 강압적으로 조선 사업을 명령하며, '죽어도 해야 한다'고 분노를 토로함.
   - 그 결과 기업인들은 모두 거절하며, 박정희 대통령은 화를 내며 사업 추진에 힘을 주는 일화.

5.️ 철강 산업 확장을 위한 정주영 회장의 역동적인 노력
   - 1965년부터 포항제철 제철소 건설 추진. 1970년 대한민국 기반 철강 소비 위한 노력.
   - 포항제철의 첫 샘물 나와 철강 생산 활발화. 1971년 바클레이 은행 4,300만 달러 대출 거절 후.
   - 찰스 롱바텀 회장 보증서로 투자 유치 성공. 정주영 회장의 역동적인 노력과 결정력 기리기.
   - 바클레이 은행 거절에도 포항제철 산업 확장을 위한 노력. 정주영 회장의 레전드 실화.

6.롱바 통 회장, 바클레이 은행에서의 이야기
   - 롱바 통 회장은 500원짜리 집회를 통해 한국의 역사적인 대목을 언급하며, 나라의 저력을 강조한다.
   - 롱바 통 회장은 바클레이 은행에 추천서를 써주고, 이를 토대로 돈을 빌려줄 조건으로 배 주문을 받아오라는 제안을 받고 거절한다.
   - 바클레이 은행의 제안은 조선소 없는 회사에 배 주문을 받아오는 것이었으나, 현실적으로 이를 거절한다.
   - 롱바 통 회장은 이번 상황에서 대단히 단호하게 조선소 없는 회사에 배 주문을 받아오는 일을 거절한 것으로 나타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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7.️실제로 26만 톤급 어 유조선 투척을 발주하는 정주영과 리바노스 회장의 이야기
   - 배 조선소 없는 상태인데도 정주영 회장이 리바노스 회장에게 26만 톤급 어 유조선 발주를 요청한다.
   - 이에 리바노스 회장은 조선소 없이 배를 발주받고, 조선소를 세울 약속을 하며 26만 톤급 배를 발주한다.
   - 대한민국에서 제작된 최대 배는 17,000톤이었는데, 리바노스 회장은 26만 톤 급의 배를 발주한다.
   - 리바노스 회장은 조건에 따라 손해를 보지 않는 딜을 체결하며, 조선소 없이 특히 큰 어 유조선을 발주받는다.

8.선박 건조 업적: 울주 선수의 놀라운 성공
   - 1972년 3월, 현대중공업 울산조선소 기공식 예정, 26만 톤 유조선 건조.
   - 72년 3월 착공에서 74년 6월 완공, 세계 최초 조선소 건설 동시 배 건조.
   - 4호 배 완공에 대한 *리바노스 회장의 극찬*과 해운업계 평가. 
   - 1974년 6월 28일, 명명식과 준공식 동시에 진행된 이러한 성공.

9.️준공 9년 만에 세계 1위 중공업
   - 1983년 준공 후 10년 만에 세계 최대 조선기업으로 성장. 상황 소설 같지만 한국에서 발생한 현실.
   - 울산 미포만, 정주영 회장의 비전으로 현대중공업 조선소 건립.
   - 오일 쇼크로 대량 주문 감소에도 주문제작으로 돌파.

10.️선박 주문과 인수 취소의 사례와 그에 따른 전개
   - 차량 주문 시 주문제작이 아닌 재고 차량 제공으로 미 받을 수 있는 이유는 소나타 수백, 수천대가 이미 생산되었기 때문이다.
   - 선박 주문 후 선주가 취소하면 회사는 위약금을 내고 이를 기반으로 판단해야 하며, 선박은 화물로서 판매되지만 위험 존재.
   - 유조선 주문 후 인수 취소시, 현대중공업의 창업 모습으로 현대상선의 설립과 발전 과정을 엿봄.
   - 해운과 관련된 회사로 전환도 있음.

11.️한국 조선 산업의 강점: 고부가 선종 제조 및 선박 기술력
   - 한국과 중국의 조선 산업을 비교하면, 대부분의 수주가 한국과 중국에서 이루어지는 구조이다.
   - 한국의 강점은 고부가 선종의 기술력이며, Genesis G80, G90, 그리고 GV80와 같이 고급 차종의 제조에 있어서 경쟁 우위를 가진다.
   - 중국은 대체로 컨테이너선이나 벌크선과 같이 기술적으로 비교적 쉬운 선종에 주로 집중하고 있다.
   - 이에 따라 중국은 고부가 선종인 암모니아 운반선과 같이 어려운 선종을 만드는 데 어려움을 겪고 있으며, 한편 한국은 고부가 선박의 생산을 강화하고 있다.
   - 전체적으로 우리나라는 고부가 선종을 중시하여 안정적인 조선 산업을 유지하고 있으며, 앞으로 미래가 밝은 상황이라고 할 수 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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