이 글은 유대인의 역사와 그들이 겪은 핍박, 고난, 그리고 그 속에서도 전통과 관습을 지켜온 이야기를 다룹니다. 특히, 유대인들이 겪은 다양한 고난과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, 유대인의 정체성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. 이 영상을 통해 유대인의 역사와 그들이 당한 차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,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.
핵심주제
유대인은 모계혈통을 따르며, 역사 속에서 박해와 추방을 겪어왔다.
- 유대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하며, 이는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.
- 유대인은 기원전부터 여러 제국의 침략과 멸망을 겪으며 디아스포라라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.
홀로코스트는 유대인에게 역사적 고통을 안겨주었고, 이스라엘 건국의 기초가 되었다.
- 홀로코스트의 참사는 유럽인들로부터의 죄의식을 촉발시켜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국제적 지원을 이끌어냈다.
- 이 사건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귀환하게 되었고, 그들은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자 단결하였다.
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은 하마스와의 갈등으로 인해 복잡해지고 있다.
-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, 국민들 또한 전쟁 지속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.
- 특히 아동 학대와 같은 인도적 문제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으며, 국제 사회에서도 주목받고 있다.
유대인은 디아스포라를 통해 강력한 정체성과 경제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.
- 유대인이 여러 나라에서 살아온 것은 그들의 경제적 지배와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요소가 된다.
- 또한 그들은 창의적 교육 방식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.
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역할은 미국 정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.
- 미국 내에서 유대인들의 로비는 강력하며, 정치인들은 이스라엘 지원을 반대할 경우 선거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.
- 특히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유대인으로서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지만, 여론은 오는 세대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고 있다.
1. 유대인의 정의와 모계 혈통의 중요성
- 유대인은 모계의 혈통을 따라 정의된다.
- 할아버지가 유대인이어도 할머니나 엄마가 유대인이 아니면 유대인이 될 수 없다.
- 엄마가 유대인인 경우에만 유대인으로 인정받는다.
- 이것은 엄마가 자신의 아이의 혈통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종교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긴다.
- 모계 혈통으로 인해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이민자의 수가 제한된다.
2. ️유대인의 역사적 핍박과 고난
- 남편, 할아버지, 아버지가 유대인일 경우 유대인으로 인정받아 이주할 수 있지만, 이스라엘 시민이더라도 종교법에 따라 유대인이 아닐 수 있다.
- 유대인의 핍박과 고난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시작되며, 과거의 전쟁에서는 승자가 패자의 인구를 강제로 이동시키는 관습이 있었다.
- 유대인들은 통일 왕국을 이루었다가, 남쪽의 유다 왕국과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으로 나뉘게 된다.
- 기원전 8세기에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 제국에 멸망하고,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흔적을 찾기 어려워진다.
- 2세기 후, 남쪽 유다 왕국이 바빌로니아 제국에 멸망하면서 바빌로니아로 끌려가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.
3. 고레스 대왕과 유대인의 역사적 고통
- '리스 오브 바빌론'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에 의해 붙잡힌 상황을 한탄하는 노래를 담고 있다.
- 이들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대왕에 의해 해방되었고, 이는 구약 성서 이사야서 45장 1절에서 언급된다.
-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유대인의 고통이 시작되었으며, 로마는 70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해 성전의 대부분을 파괴하였다.
- 이후 유대인들은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으나, 결국 로마 제국에 의해 강제 추방되며 디아스포라가 시작되었다.
4.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에 대한 고찰
-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, 로마 군인이 그의 죽음에 개입했지만, 기독교는 유대인이 예수를 죽였다고 비난해왔다.
- 유대교인들은 아브라함을 믿는데도 불구하고, 아브라함의 아들인 예수를 죽이라고 결정했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.
- 예수는 당시에 유대 사회에서 '눈에 가시'였고, 그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주장했다.
- 율법의 근본 정신은 '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'이라고 말하며,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그 근본 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.
- 신약 성서 마태복음 15장 11절에서 예수는 '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너를 더럽히지 않는다'고 말하며, 이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.
5. 기독교와 유대인의 역사적 갈등과 공동체
-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여기며, 유대인들이 그를 죽인 것으로 반유대주의가 확산되었다.
-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는 상황을 불만스러워하며,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관습과 종교를 지키고 살아왔다.
- 유대인의 주요 특징은 선민 사상으로, 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도 공동체와 문화를 유지했다.
- 그들은 직업의 자유가 없었고, 크리스천들로부터 땅 소유권을 주지 않아 고리대금업을 선택하게 되었다.
- 반면, 스페인에서는 무슬림들과 살아가며 서로의 문화가 비슷해 편안한 관계를 형성했다.
6. ️이스라엘 건국과 유대인의 역사
- 스페인에서 유대인들이 번창했으나,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.
- 반면 스페인 쪽 유대인들은 과거의 아픔이 적어 더 밝은 삶을 사는 경향이 있다.
- 이스라엘이 세워진 과정은 험난하며, 그 배경에는 안티세미티즘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.
- 유대인들은 박해를 받으며 유토피아적인 사회를 꿈꾸고, 공산주의에 몰입하게 되었다.
- 이로 인해 유대인들의 집단 정체성을 찾고자 한 의도가 공산당과 연결되었다.
7. ️유대인 국가 건설의 결정적 계기
- 유대인들은 새로운 유토피아가 필요했고, 1894년 주파리 독일 대사관의 스파이 사건이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.
- 이 사건에서 프랑스의 군사 기밀을 유출한 드레퓌스라는 유대인 장교가 잡히자,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받았다.
-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온 헤르츠는 이 사건을 보고 프랑스 혁명으로 얻은 해방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여전히 박해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.
- 그의 깨달음으로 인해 1896년 '유대인 국가'라는 책을 쓰고, 1897년 세계 시온주의자 회의를 조직하게 되었다.
- 또한 벨포 선언을 통해 영국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국가를 세우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.
8. ️유대인 자금과 이스라엘 건국의 복잡한 과거
- 유대인들의 자금이 필요했기에 당시 영국의 유대인 부호인 로스차일드 경에게 편지를 보냈다.
- 편지에서는 팔레스타인에 스테이트라인의 고향을 세우는 것을 찬성한다고 했지만, 돈을 빌려달라는 직접적인 요청은 없었다.
- 당시 유대인들은 독일에 대한 악감정이 없었고, 로스차일드 가문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되었으며, 영국 내에서의 유대인의 로비는 매우 강력했다.
- 1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이 즉각 생긴 것은 아니며,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유대인 외에도 많은 아랍 사람들이 있었고, 긴 세월 동안 여러 갈등이 존재했다.
- 영국은 유대인과 아랍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두 국가를 만드는 분할안을 제안했지만, 양측 모두 이를 거절하였다.
9. 이스라엘 건국과 아랍-이스라엘 전쟁
- 1948년, 유엔의 분할안이 제안되어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, 아랍 국가들은 이를 거절했다.
- 결국 유대인은 5월 14일 오후에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고 이스라엘을 국가로 선언했다.
- 이후 미국과 소련이 이스라엘을 인정하며 전쟁이 발발하였는데, 이는 제1차 아랍-이스라엘 전쟁으로, 아랍이 패배하게 되었다.
-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고통을 겪었지만, 이스라엘 건국으로 다시 부활하게 된 역사적 사건이다.
10. 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-팔레스타인 문제의 복잡성
- 유엔의 홀로코스트 승인에는 유럽인들의 죄의식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.
- 유대인 문제를 일으킨 주체는 유럽인들로, 과거에는 핍박과 차별을 당했으며, 홀로코스트는 히틀러의 아리안주의와 관련이 있다.
- 결국 600만 유대인이 희생되었고, 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.
-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대인 학살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고, 그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게 되었다.
- 현재 미국의 40대들은 이스라엘을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지만, 20대는 그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.
11. 미국 정치에서 유대인의 영향력과 이스라엘 로비
- 미국의 기성세대는 현재 10대와 20대, 심지어 유대계 미국인조차 이스라엘에 대한 부채 의식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.
- 전 세계 유대인은 약 1400만명으로, 그 중 대부분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거주하며, 이들은 종종 경제 지배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다.
- 미국 정계에서 유대인의 영향력은 상당하며, 정치인이 '이스라엘을 더 이상 도와주지 마라'고 말할 경우 다음 선거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.
- 미어샤이머 교수가 쓴 '이스라엘 로비 and US'라는 책에서 그는 미국이 절대 이스라엘 로비의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.
-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한 자리에 주 아메리칸이 많으며, 이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은 아닌데도 유대인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.
12. 유대인의 영향력과 역사에 대한 논의
- 케네디는 유대인 로비 단체를 외국 단체로 등록하려고 했고, 이를 통해 미국 정치에 돈을 뿌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법이 통과되었으나, 이로 인해 암살당했다는 설이 있다.
- 르윈스키와 빌 클린턴의 스캔들과 관련하여, 유대인들이 르윈스키를 투입해 클린턴을 잡으려 했다는 음모론도 돌고 있다.
- 2차 세계 대전 당시,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며 미국 사회에 significant한 영향을 미쳤다.
- 미국에서 유대인을 만나는 것과 달리 이스라엘에 가면 버스 운전하는 유대인을 처음 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.
- 미국 금융계와 할리우드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활동하고 있으며, 유명한 유대인이라면 스티븐 스필버그나 마크 주커버그가 있다.
13. ️디아스포라의 힘과 유대인의 교육 방식
- 유대인들이 여러 나라에서 살아온 것은 그들의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었다.
- 만약 유대인들이 한 나라에만 살았다면, 그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.
- 유대인 교육은 질문과 답변을 중시하여 창의적 사고를 자극하며, 학생들이 질문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진다.
- 결국 이러한 교육 방식은 학생들이 총명하고 창조적으로 성장하게 만들고, 종종 수업 중에 질문이 많아 선생님이 짜증을 내는 경우도 발생한다.
14. 유대인의 똑똑함과 창의적 사고의 이유
- 유대인들이 똑똑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,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스라엘 태생이 아닌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했다.
- 이들은 미국의 학문적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으며 연구를 진행했고,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오기도 했다.
- 유대인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온 덕분에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고, 전통적인 성경 학습을 통해 학문적 능력을 기르기도 한다.
- 그들은 단순히 정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, 창의적 사고와 새로운 발견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, 한국인보다 창의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.
- 마지막으로, 이스라엘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성 박사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.
15. ️이스라엘 정치와 하마스의 영향
- 이스라엘 대중과 유대인의 종교적 논쟁을 언급하며, 하나님에 대한 질문과 논쟁이 많다는 사실을 설명했다.
- 베냐민 네타냐후는 15년 가까이 통치하며 이스라엘 내에서 무한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, 이는 리쿠드가 2000년대 이후 독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.
- 2005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철수한 뒤 하마스가 등장하여 전쟁을 시작, 이스라엘 국민들은 평화를 원했지만 테러와 로켓 공격만 받았다.
- 이스라엘 국민들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아이디어에 회의감을 느끼며, 네타냐후의 통치에 대한 신뢰가 하락했다.
- 전쟁 후 정치적 생명이 위태롭고 무려 70%가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, 여전히 30~40%는 리쿠드당을 지지하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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