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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/뉴스

이스라엘 - 이란 전쟁할까?

by 이레이피씨 2024. 4. 17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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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란-이스라엘의 의미 없는 자존심 싸움

1.️이란이 이스라엘 수도를 공격하다
   - 이란은 이스라엘 수도 텔 아비브를 미사일로 폭격했으며, 인명피해는 거의 없었다.
   - 이란의 방공 체계인 아이언 돔이 미사일을 효과적으로 막아냈고, 이로 인해 주말 동안 이슈가 되었다.
   - 이란의 이슬람 혁명은 1979년에 일어났으며, 이란과 이스라엘 간의 긴장 관계에 대해 알아보자.

2.️호르무즈 해협의 중요성과 이스라엘 관련 선박 나포
   - 이스라엘과 관련된 선박을 호르무즈 해협에서 발견함.
   - 이 지역은 중동산 *원유 생산*과 *유조선 이동*에 중요하며, 이란과 다른 국가들이 있는 전략적 위치이다.
   - 이스라엘이 호르무즈에서 선박을 나포함으로써 *정치적 압박*을 가하며 중동산 원유 수급에 영향을 줄 수 있다.
   - 해협이 봉쇄된다면 *동아시아 국가들* 또한 영향을 받게 되어 중동산 원유 수급에 문제 발생 가능성 있음.

3.이스라엘 아이언돔의 미사일 요격 능력과 국민들의 반응
   - 미사일이 날아오는 영상 속에서 이스라엘의 *아이언돔 방공체계*는 높은 성능으로 전세계에서 최고로 평가받는다.
   - 이라크로부터의 미사일 공격을 아이언돔이 99% 요격, 손상은 소녀 한 명만 있었으며, 서울에 비유하여 상상할 수 있다.
   - 이스라엘 국민들은 미사일 요격을 불꽃놀이처럼 감상하며 일부는 대피 대신 찍는 행동을 한다는 놀라운 반응을 보인다.

4.이스라엘과 이란의 군사적 갈등과 미사일 공격
   - 현지 사람들은 아이언 돔의 성능을 믿지만, 안전 불감증에 빠진 듯하다.
   - 하마스가 3년 전 50발을 발사했으나 아이언돔이 130발을 성공적으로 요격함.
   - 이란 미사일은 성능이 조잡하지만 이스라엘의 요격 능력은 대단하여 이란의 보복 가능성.
   - 이란 영사관 폭격으로 인한 군사적 갈등으로 피해 보복이 우려됨.

5.이란의 지도자들과 이란-이스라엘 관계
   - 이란의 현재 지도자인 알리 호세인 하메네이는 이란 최고 지도자이며 독재적 역할을 하고 있다.
   - 하며, 1989년 이후 35년간 혼자 이를 담당하고 있다.
   - 이란에는 대통령이 있긴 있지만, 사실상 권력이 없어 이란이 종교관점에서 통치되는 것으로 보인다.
   - 이슬람 혁명에 주도적 역할을 한 호메이니를 통해 이란과 이스라엘의 관계가 언급되며, 과거 더 친한 관계였다고 설명된다.

6.호메이니와 이란 이슬람 혁명의 역사
   - 1989년에 돌아가신 이란 이슬람 혁명을 일으킨 호메이니가 중요한 역할을 한다.
   - 이란은 팔레비 왕조가 무너지며 호메이니가 신정 국가로 변모시켜 이슬람 국가로 통치하게 된다.
   - 이슬람 원리주의자인 호메이니는 샤리아 법과 코란 성경에 따라 법, 정치, 판단을 결정하는데 여성 인권 문제가 공론화된다.

7.이란 혁명 수비대 사령관 솔레이만의 암살과 그에 따른 이란 국민들의 반응
   - 솔레이만은 이란의 거의 2인자로 자리잡은 인물로 이란 국민들로부터 엄청나게 존경을 받았다.
   - 솔레이만은 미국에 암살당한 이란 혁명 수비대 사령관으로, 그의 옆에 있는 영사관 또한 폭격으로 날아가는 사건이 발생했다.
   - 이에 따라 이란 국민들은 영사관 폭격 희생자들을 추모하고 있으며, 하멘 A지도자 등은 솔레이만과 혁명의 중요성에 대한 참배를 진행하고 있다.
   - 1979년 이란 이슬람 혁명 전까지는 안정적인 국가였으나, 솔레이만의 암살 등으로 국민들의 분노와 추모가 이어지고 있다.

8.️️팔레비 왕조의 백색 혁명과 무너짐
   - 팔레비 왕조는 친미 국가였으며 백색 혁명으로 개혁을 시도했다.
   - 백색 혁명은 종교 땅 토지 개혁과 여성 인권 증진을 목표로 하였으나 논란을 일으켰다.
   - 팔레비 국왕은 종교 땅을 토지 개혁을 시도하며 논란을 초래했다.
   - 백색 혁명은 많은 사치를 했던 팔레비 왕조의 개혁과 막장을 일으키는 여러 사안들을 포함했다.

9.이란의 혁명: 호메이니에 의한 이란 신정 국가로 전환
   - 이란의 이슬람 국민들은 미국과 친밀한 관계를 지니던 팔레비 국왕의 비밀 경찰 조직 설립을 불안해했다.
   - 미국은 팔레비의 정권 유지를 돕기 위해 비밀 경찰 설립을 지원했지만, 이는 이란 이슬람 혁명을 촉발시키는 계기가 되었다.
   - 1979년 이란 혁명으로 왕정 국가는 신정 국가로 변모하였고, 그 이후로 이란은 40여 년 동안 신정 국가로 남아있다.

10.1979 이란 혁명 전과 후 사진 비교
   - 1979년 이란 이슬람 혁명 이전과 이후 사진 비교
   - 이전에는 여성 인권과 참정권이 올라가고 여성들의 의류 자유가 허용되었으나, 혁명 후 여성들의 인권이 악화되었음.
   - 혁명 후에는 여자는 시쟈를 필수로 해야 하며, 여성들이 시쟈 반대 시위를 하였으나 현재에 이르러서도 여성들의 의류 자유는 제한되어 있다.
   - 역사를 통해 인권 진전이 항상 일어나는 것은 아니며, 문명이 항상 진보하는 것도 아님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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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1.이란의 정치 전략과 운명
   - 이란은 미국과 대립하면서 실제로 전쟁은 피하는 '종이 호랑이'이다.
   - 미국의 솔레이마니 암살에도 전쟁 대신 국민 타협을 선택하며, 공격 시 미국이 피해 입으면 안 된다.
   - 무인 드론으로 이란의 솔레이마니를 바그다드 공항에서 정확히 살해 즉시 휴민트 사용되었다.

12.️미국과 이란의 군사 충돌, 알아사드 공군 기지 공격 사건
   - 미국이 이란의 솔레이마니를 암살하기 위해 정보 수집과 확인 작업을 거친 후 무인기를 사용하여 알아사드 공군 기지에서 정확한 타겟을 공격했다.
   - 이란은 알아사드 공군 기지에 사람이 거의 없는 상태에서 미사일을 쏘기 전에 미군에게 사전에 알려주었다.
   - 미국은 이란의 미사일 공격으로 인해 피해가 없었지만, 이란이 미국에 대한 보복을 예고하며 전쟁 여론이 생겼다.
   - 이란은 미군을 공격하는 것에 대한 부담을 고려하여 알아사드 공군 기지에 사람이 거의 없는 상태에서 미사일을 발사했다.

13.️이란의 전략: 미국과 전쟁은 원하지 않지만 도움을 주는 무장단체를 이용
   - 미군에 대한 피해는 없었으며, 이란은 전쟁을 원하지 않는 나라이다.
   - 이란은 미국과 싸워도 무조건 지는 것을 알기 때문에 다른 전략을 사용한다.
   - 이란은 말을 잘 듣는 무장단체를 이용하여 도움을 받으며, 대표적으로 헤즈볼, 후티반군, 하마스 등이 있다.
   - 이들은 이란의 지원을 받고 무기를 보유하며, 이란의 지시에 따라 행동한다.
   - 하지만 실제로 이들은 아무것도 가지고 있지 않다.

14.이란 vs 이스라엘: 대리 전쟁과 정치적 상황
   - 이스라엘의 관점에서는 이란이 *헤게모니*를 추구하고 있으며, *하마스* 등을 지원하여 중동 지역에 영향력을 행사하고 있다.
   - 이란의 입장에서는 미국과 직접 대립하기 어려우므로, 이스라엘이 대신 미국을 대응 대상으로 삼는 것으로 보인다.
   - 또한, 네타냐후 이스라엘 총리의 정치적 문제와 최저 지지율이 이스라엘 내부 정치의 중요한 쟁점으로 언급된다.

15.️가자지구에서의 이스라엘 군의 학살과 바이든 대통령의 인권 키워드
   - 이스라엘 군은 하마스를 제거하는 과정에서 가자지구를 침공하고 있는데, 국제 기구에서는 이스라엘 군이 거의 학살을 하고 있다고 발표하고 있다.
   - 이스라엘 군은 학살 중이라고 주장하지 않지만, 국제 구역에서는 민간인만 2만 명 이상이 죽었다고 알려져 있다.
   - 바이든 대통령은 인권을 중요시하는 사람으로 알려져 있으며, 이스라엘의 인권 문제에 대해 관심을 가지고 있다.
   - 네타냐후는 인권에 대한 키워드와 거리가 먼 사람으로 평가받고 있다.

16.이스라엘 : 정치적 혼란 속 미국의 조치
   - 이스라엘 군인의 가자지구 상황에 대한 논란 속에서, 바이든은 미국의 중재를 제안하며 이스라엘의 행동을 촉구한다.
   - 네타냐후가 지지율 하락과 총선으로 인한 압박 속에서, 강한 리더십을 강조하며 대응하고자 한다.
   - 미국의 간섭과 전화를 받는 가운데, 이란 대응에서 결단력과 강인함을 보이려는 모습을 보인다.

17.이스라엘 정치에서의 네타냐후와 이란의 대립
   - 네타냐후의 아들은 의무 징집 대상임에도 미국에서 전쟁 홍보하며 논란, 국민들의 비판 속에서 참전을 하지 않아 논란 초래.
   - 이스라엘 국민들은 네타냐후의 정치적인 선택에 대해 의문 제기하며, 이란과의 관련에서 이스라엘을 대표하는 인물로 놓인 네타냐후와 바이든의 갈등.
   - 바이든이 네타냐후에 이란 보복 공격 줄이라고 권고한 후, 뉴욕 타임즈의 보도에 따르면 네타냐후가 이란 보복 계획을 철회했다. 그러나 최신 보도에 따르면 이스라엘은 이란의 보복을 다시 재천명했다.
   - 네타냐후가 고통스러운 보복을 공언하며 이란의 공격에 대응하고 있는 상황.

18.이스라엘의 네타냐후와 총리직에서의 고민
   - 네타냐후의 지지율 하락과 은퇴 때 부패 문제로 대면해야 한다.
   - 네타냐후 지지층은 전쟁 지지하는 구 세력이지만 자신의 총리직에서의 선택이 고민스러운 상황.
   - 네타냐후가 은퇴할 경우 감옥으로 갈 확률 높아 목숨도 걸고 고민하며 정치를 이어가고 있는 것으로 보인다.
   - 네타냐후의 아들이 전시 상황으로 인해 징집 대상인데, 네타냐후의 정치적 결정이 자신과 가족에도 영향을 미치고 있다.

19.️미국, 이란, 이스라엘 간 퍼포먼스로 이어지는 정치적 긴장.
   - '퍼포먼스'로 행동할 가능성 높음. 미국과 이스라엘이 이란에 관해 전략적 상호작용을 논의.
   - 정치적인 판단과 자기 입장으로 행동. 결과에 따라 퍼포먼스 증폭. 4차 이후 5차 중동전쟁 가능성과 미국의 중재 역할 의미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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